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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선수 박주영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골잡이였다. 프리미어리그 명문구단 아스날에 입단해 기대를 모았지만, 별 다른 활약을 보여주지 못하고 현재는 K리그로 복귀해 뛰고 있다. 박주영은 1985년 7월 10일 대구 출생이다. 키 182cm, 체중 75kg이다. 반야월초등학교, 청구중학교, 청구고등학교를 거쳐 고려대에서 학업을 마쳤다.

 

고등학교 때 브라질로 축구 유학을 다녀왔고, 청소년 대회에서 득점왕을 차지하며 유망주로 주목받았다. 2005년 FC서울에 입단해 올해의 선수상, 신인상, 인기상을 차지했다. 갓 데뷔한 신인으로서 대단한 업적을 이룬 셈이다. 2008년에는 프랑스 리그앙 AS모나코로 이적하여 준수한 활약을 펼쳤다.

 

이후 AS모나코가 강등당하면서 박주영도 이적을 타진했다. 그리고 프리미어리그의 아스날에 입단하는 기적(?)을 맛보게 되었다. 가뭄에 콩나듯 부여받은 출전 기회에서, 역시 뜨문뜨문 터지는 골을 기록했던 박주영이다. 당연히 아스날 팀 내에서 입지는 점점 좁아져만 갔다.  

 

이후 셀타 데 비고, 왓포드 FC, 알 샤바브 FC로 이적 및 임대생활을 거쳤다. 여러 가지 문제로 복잡했던 박주영이었지만, 결국 친정팀으로 돌아오는 길을 택했다. FC서울에서 얼마의 연봉을 받고 있는지는 공개되지 않았지만, 백의종군 수준이라고 한다. 비록 부진한 시즌도 있었지만 2019 커리어 하이를 찍으며 이름값을 해냈다. 36경기에 출전해 12골, 7 도움이라는 준수한 성적을 내었다. 1985년생임을 감안하면 아직도 감이 살아있는 박주영이다. 

축구천재 박주영 

우리나라 축구계에서 박주영의 등장은 센세이셔널했다. 기존에 활약했던 스트라이커들은 골대 근처에서 공을 기다리다 감각적인 슈팅으로 골을 만들어내는 게 일반적이었다. 쉽게 말하면 스트라이커 스스로 공간을 만들어내고 슛을 하는 케이스는 거의 없었다. 

 

하지만 혜성처럼 등장한 박주영은 달랐다. 깡마른 체구의 박주영은 빠른 발을 이용한 공간 침투 능력이 뛰어났고, 게다가 개인기를 갖춘 선수였다. 현란한 발재간으로 상대 수비진을 무너뜨리는, 유럽리그에서나 볼법한 플레이를 구사하는 선수가 등장한 것이다. 

 

그래서 박주영은 축구천재로 불렸다. 2005년 입단한 FC서울에서 32경기 18골이라는 엄청난 득점력을 보여주었다. 현란한 드리블로 상대 수비진을 털어내고, 182cm의 키로 공중볼 다툼에서도 전혀 뒤지지 않았다. 거기에 슈팅 감각이 좋아 패널티박스 안에서 플레이는 물론이고, 프리킥도 잘 차는 선수다.

 

물론 깡마른 몸이 보여주듯 몸싸움은 약하다. 유럽 진출 후 월등한 피지컬을 자랑하는 선수들에 밀려 자주 넘어지는 장면을 연출하기도 했다. 하지만 AS모나코에서는 원톱으로서 많은 득점은 물론, 연계플레이에도 능한 플레이메이커로서도 한국 탑급 선수가 바로 박주영이었다.

 

박주영은 이전에 활약했던 황선홍, 최용수, 이동국과는 성격이 다른 플레이어다. 황선홍과 이동국이 강력한 피지컬을 앞세워 골문 앞에서 공을 키핑해 슛을 날리는 황소 같은 스타일이라면, 박주영은 연계 플레이는 물론 개인기를 이용해 스스로 공간을 만들어내고 득점을 낼 수 있는 선수였다.

 

하지만 점점 나이를 먹어가고, 유럽리그에서 복귀, 병역문제 등에 시달리며 선수 스스로 멘탈관리가 어려웠던 모양이다. 그래서 예전과 같은 투지와 승부사 기질은 찾아보기 힘들다. 한 때는 우리나라 축구를 이끌어갈 유망주이자, 유럽파로 손꼽히는 선수였지만, 본인 커리어에 난 상처가 아물기까지는 시간이 많이 필요했던 박주영이다. 앞으로 박주영이 얼마나 더 활약할 수 있을지는 알 수 없지만, 그는 분명 한국 축구 역사상 가장 뛰어났던 스트라이커임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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