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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선수 홍명보

홍명보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축구선수다. 준수한 외모와 강력한 카리스마로 현역 시절 주장으로 대표팀을 이끌었고, 은퇴 후 지도자와 행정가의 길을 걷고 있다. 1969년생인 홍명보는 키 181cm, 체중 74kg의 준수한 피지컬을 갖추고 있다. 주 포지션은 센터백이었다. 포항제철, 쇼난 벨라메, 가시와 레이솔, LA갤럭시에서 축구선수로 활약했다. 은퇴 후 대한민국 대표팀 코치로 시작해 U-20, U-23 대표팀을 이끌었고, 러시아 리그 안지 마하치칼라 코지와 중국 항저우 취청의 감독을 맡기도 하였다. 현재는 대한축구협회 전무이사로 행정가로 일하고 있다. 

 

1990년대 아시아를 대표하는 축구선수로 특히 센터백 포지션의 최강자로 꼽혔다. 국가대표에서 A매치 136경기를 출전하였고, 2002 한일 월드컵 4강 신화의 주역이다. 아시아 선수 최초로 월드컵 브론즈볼과 월드컵 올스타 팀, FIFA 올해의 선수 후보 37인 중 17위를 기록하는 등의 업적을 달성하였다. 

 

일본 J리그 가시와 레이솔로 진출하여 중하위권팀을 리그 상위권으로 올려놓았고, 외국인으로서 주장을 맡는 등 대활약을 하였다. 당시 가시와 레이솔에는 홍명보, 환성홍, 유상철이 함께 뛰어 외국인 3명 제한을 모두 대한민국 대표팀 주전들이 채우게 되었다. 

 

2002년 월드컵 이후 다시 포항 스틸러스에 돌아와, 월드컵의 인기를 이어나가며 스타 플레이어로 활약했다. 이후 미국 LA갤럭시로 이적해, 늦은 나이에 일본이 아닌 타국으로의 해외진출의 꿈을 이루었다. 하지만 홍명보 하면 월드컵이고, 월드컵 하면 홍명보를 꼽을 정도로, 프로생활보다 국가대표로서 더 큰 족적을 남겼다. 

 

홍명보는 1989년부터 2002년까지 국가대표로 뛰었다. 1990년 이타리아 월드컵에 출전했지만, 대표팀은 최악의 성적표를 받았다. 반면 홍명보는 당시 어린 나이였지만 앞으로 국가대표를 이끌 선수로 주목받는 등, 어릴 때부터 크게 성장할 선수로 기대를 모았다. 

 

 

1994년 미국 월드컵은 홍명보가 만개 한 기량을 보여준 대회였다. 스페인전에서 프리킥을 성공 시켰고, 서정원에게 어시스트하여 동점을 만드는 대활약을 펼쳤다. 독일전에서도 완벽한 수비로 철벽방어를 펼쳤고, 지고 있던 상황에서 중거리슛을 성공시키며 월드컵에서 2골이나 기록하는 기염을 토했다. 

 

그리고 대망의 2002년 거스 히딩크 감독이 부임한 후 몇달동안 홍명보를 국가대표 명단에서 찾아볼 수 없었다. 젊은 선수들을 시험대에 올렸던 거스 히딩크지만, 이내 홍명보의 필요성을 인지하고 그를 선발하여 홍명보, 최진철, 김태영 3백 전술로 월드컵에서 4강이라는 신화를 달성하였다. 월드컵 이후 브라질과의 평가전에서 황선홍과 명예롭게 은퇴하며, 지도자의 길을 걷고 있다. 

홍명보의 업적 그리고 논란

대학시절 평범한 선수에 불과했지만, 뛰어난 축구지능으로 수비에서 괄목한만한 성장을 보인다. 피지컬과 스피드가 뛰어나진 않지만 길목 길목을 지켜 공격을 차단하는 플레이를 구사한다. 미드필더 출신이라 패스가 정확하고, 공격적인 경향도 있어 득점력도 준수하다. 

 

1994년 미국 월드컵에서 경기조율, 패스 그리고 득점까지 본인의 주가를 크게 올렸다. 정확한 롱패스와 빌드업 능력을 갖추고 있으며, 중거리슛도 좋다. 하지만 2002년 터키와의 3-4위 결정전에서 최단 시간 골을 내주는 등 1:1 수비에서는 약점을 보인다. 

 

또 몸싸움이 약해 센터백으로서 치명적인 단점을 보이기도 했다. 물론 몸싸움이 아주 안 좋은 건 아니었지만, 유럽의 건장한 축구선수들을 상대하기에는 홍명보의 피지컬과 파워가 떨어졌던 건 사실이다. 홍명보는 떨어지는 피지컬 능력을 번뜩이는 축구 지능으로 커버했다. 

 

상대 선수의 움직임을 미리 예측하고 길목을 지키고, 우리 수비진이 뚫릴걸 예상해 미리 위치선정을 하는 등 당시 우리나라에서는 보기 힘든 수준 높은 플레이를 구사했다. 또 양발을 잘 사용하여 모든 발로 태클이 가능해 커버링에 특화된 수비수였다. 또 패스와 슛까지 양발로 가능했기 때문에 공격 전개 시 다양한 플레이로 상대 진영을 농락한 홍명보다. 

 

은퇴 후 지도자로 변신했지만 항상 논란을 몰고 다니고 있다. U-20월드컵과 2012 런던 올림픽을 제외하면 늘 기대에 못 미치는 저조한 성적표로 국민을 실망시켰다. 중국리그에 진출하여 항저우 감독을 맡았지만 성적 부진으로 사임했다. 구단이 성적보다 선수를 팔아 돈을 버는데 급급하다고 비판하며 자리를 떠났다. 

 

또 홍명보는 박주영과 인연(?)이 깊다. 박주영이 아스날에서 벤치를 따뜻하게 달구고 있을 때, 그를 국가대표에 발탁하여 스스로 논란을 만들었다. 더불어 병역 연기 논란으로 시끌했던 박주영을 설득해 올림픽에 내보냈고, 박주영이 군대에 가지 않으면 본인이 대신 간다고 하는 등 수위가 높은 위험한 발언을 자주 하였다. 

 

현재는 지도자가 아닌 축구협회의 전무이사로 선임되어 활동하고 있다. 다시 지도자로 복귀 할 가능성이 충분하지만, 이전에 보여줬던 논란을 비추어 봤을 때 쉽게 돌아오긴 힘들 것 같다. 원래부터 행정가로서의 꿈을 키웠던 홍명보라 당분간은 축구협회 업무(?)에만 치중할 것으로 보인다. 

 

결과적으로 홍명보는 선수시절 국가대표 캡틴으로 무수한 존경과 찬사를 받은 선수였다. 축구 불모지였던 한국에서 나온 스타급 플레이어로 월드컵에서 큰 족적을 남겼다. 하지만 은퇴 후 지도자로서는 최하점을 받으며 논란에 논란을 가중시켜, 현재는 행정가로서 조용히 살고 있다. 그럼에도 홍명보는 영원한 리베로, 국가대표 캡틴으로 기억되는 최고의 선수였음은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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