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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범근

우리나라에서 유럽의 선진 축구를 가장 먼저 경험한 건 차범근이다. 젊은 세대에겐 국가대표 감독으로 유명한 차범근이지만 젊은 시절 유럽 무대를 평정하며 이름을 알렸다. 1970~80년대 세계 최고의 독일 분데리스가 SV다름슈타트, E.프랑크푸르트, 바이어04 레버쿠젠 등에서 활약했다.

 

차범근의 독일 분데스리가 진출은 단순한 유니폼팔이가 아니었다. 축구 불모지 한국에서 출생한 차범근은 독일 분데리스가 진출 후 시즌 베스트 11에 2회 선정되었고, 11년 간 분데스리가 외국인 최다 득점 타이틀을 보유하는 등 엄청난 활약을 일구어 내었다.

 

독일 분데스리가 1부 리그에서 무려 12년간 활약하며 총 308경기에 출장하여 98골을 기록하였다. 그가 기록한 98골 중 페널티킥 득점은 0점이다. 또 그가 받은 옐로카드는 단 3장에 불과하다. 오랜 시절 활약한 차범근이라 그를 기억하는 사람도 남아 있는 자료도 적지만, 그의 활약은 유럽 무대를 흔들어 놓기에 충분했다. 

박지성

차범근 이후 많은 선수들이 유럽무대를 두드렸지만, 인상적인 활약을 보여준 건 박지성이다. 무려 프리미어리그의 명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소속으로 활약하였다. 박지성은 한국인 최초의 프리미어 리거이자 프리미어리그 우승, UEFA 챔피언스 리그 우승, FIFA 클럽 월드컵 우승이라는 대기록을 달성하였다.

 

또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 주전으로 출전하였고, 맨체스터 유나이트 주장을 맡는 등 인상적인 활약을 보여주었다. 물론 닥주전이라기 보다는 교체 멤버 혹은 조커로써 활용도가 높았던 박지성이라 벤치에 앉아 있는 날도 많았다. 그래서 붙여진 별명이 '벤치성'이다.

 



 

하지만 누가 뭐래도 박지성은 해외축구의 아버지 '해버지'라는 별명이 어울린다. 엄청난 활약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기억속에서 멀어진 차범근과는 달리, 박지성의 프리미어리그 진출 이후, 국내 축구팬들의 관심은 유럽 무대로 쏠렸다. "한국인이면 맨유 응원합시다"라는 유행어가 있을 정도로 박지성이 남긴 족적은 후배들에게 새로운 길을 열어 주었다. 

손흥민

박지성이 은퇴하고 유럽무대에서 활약하는 우리나라 선수들의 소식이 뜸해질 때쯤, 손흥민이 나타났다. 독일 유소년 축구를 경험하고 분데리스가에서 활약하고 있다는 것은 알았지만 이렇게나 성장할 줄은 몰랐다. 2010년 함부르크 SV를 시작으로 분데스리가에서 인상적인 활약을 보여준 손흥민이다.

 

그러던 2015년 프리미어리그의 명문 구단 토트넘 핫스퍼FC가 손흥민에게 구애의 손짓을 보냈다. 손흥민은 무려 5년 계약에 아시아 출신 축구선수 중 최고 이적료를 기록하며 토트넘으로 이적했다. 이적 초반에는 별다른 활약을 보여주지 못해 성장의 한계에 다다른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을 받던 그였다.

 

하지만 엄청난 노력파답게 이를 극복하고 토트넘은 물론 프리미어리그에서 손꼽히는 선수로 성장하였다. 빠른 스피드와 남다른 체격을 갖추었고, 양발을 자유자재로 쓰며 토트넘 간판 골잡이로 성장한 손흥민이다. 프리미어리그와 UEFA 챔피언스리그 아시아인 통산 최다 득점, 아시아 선수 최초로 FIFA/FIFPro 월드 XI 후보, 발롱도르 후보 30인에 선정되었다. 차범근 이후 탄생한 '월드 클래스' 골잡이를 우리도 갖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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