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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리야 벨랴코프 나이&프로필

 

일리야 벨랴코프(Илья Беляков , Ilya Belyakov)의 나이는 1982년생이다. 러시아가 소련이었던 1982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태어났다. 학력은 극동연방대학교 한국학과를 졸업했고 연세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 대학교 인류학과 박사과정을 밟았으나 현재는 휴학 중이다.

 

현재는 수원대학교 인문사회대학 외국어학부 러시아문학 전공 교수를 맡고 있다. 키 176cm, 체중은 70kg이다. JTBC <비정상회담>에서 러시아 대표로 출연해 유명해졌으며, 2016년 한국으로 귀화해 현재는 한국인이다. 

 

러시아 극동연방대학교에서 한국어학을 전공했지만, 사실 처음부터 한국어에 관심이 있었던 건 아니다. 고등학교 때부터 언어에 관심이 많았지만, 1순위로 지원했던 영어영문학과에 낙방했다. 다른 학과를 알아보던 중 일본어학과와 한국어학과 모두 지원했는데 한국어학과만 합격해 한국어를 시작했다. 

 

입학 당시 일리야는 한국에 대한 지식이 전무했다. 남한과 북한의 차이를 알지 못했고, 서울과 평양이 어딘지도 몰랐다. 한국어를 중국어의 사투리 정도로 인식했다. 한국과 가까운 블라디보스토크에 거주해 한국제품을 많이 접했지만 당시에는 일본제품으로 인식했을 정도다. 

 

▶ 한국 방문

 

일리야는 2003년 장학생으로 뽑혀 처음 한국땅을 밟았다. 연세대학교 어학당에서 1년간 한국어를 배웠다. 다시 러시아로 돌아가 학부과정을 마쳤는데, 한국어 능력시험에서 가장 높은 6급을 받았다. 이후 정부초청 장학생으로 지원해 연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석사과정에 입학했다. 

 

대학원에 입학하고 삼성전자에 입사해 인사과에서 근무했다. 석사과정을 졸업한 후 언어학을 공부하기 위해 미국의 사우스캐롤라이나 주립대학 인류학과 박사과정에 입학했지만 현재는 휴학 중이다. 한국에서 의료 통역, 관광가이드, 번역 등의 일을 했다. 

 

한국에 처음왔을 때 일리야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해외 땅을 밟았다. 많이 외로웠고 가족이 그리웠다. 한국에 오니 음식이 다르고 공기, 물, 침대 등 모든 게 달라 불편했다. 하지만 점차 익숙해져 이제는 서울을 본인의 집으로 여기고 있다. 서울은 교통이 편리하고 공공기관이 친절하며, 24시간 내내 필요한 것을 살 수 있다며 엄지를 치켜세운다.

 

일리야는 한국어를 공부하기 위해 드라마와 예능 프로그램에 심취했다. 대중들이 쓰는 한국어 표현을 배우기 위해 드라마를 정말 많이 봤다. 일리야가 처음으로 접한 드라마는 <천국의 계단>이다. 재미있고 스토리가 슬퍼 드라마를 보며 울기도 했다. 

 

또 <내 이름은 김삼순>을 재밌게 보았고, <미생>을 보며 공감했다. 한국 회사에서 일을 해봤기 때문에 더욱더 친숙하게 다가온 드라마였다. 이제는 한국어를 자유롭게 구사하고 의료 통역을 할 정도로 높은 수준의 어휘력을 갖춘 진정한 대한민국 국민이 되었다. 

 

▶ 일리야와 삼성전자

 

일리야는 한국에서 대학원을 졸업 후 삼성전자에 입사했다. 삼성전자 DMC연구소 인사그룹에서 근무했는데 한국의 조직 문화와 인간관계 때문에 어려움도 많이 겪었다. 삼성전자 재직 시절 일리야는 외국인 임직원들의 고충에 귀를 기울였다.

 

일리야가 할 수 있었던 일은 고충을 듣고 공감하는 일뿐이었지만, 많은 외국인 임직원이 같은 고민을 안고 있어 함께 아파해하곤 했다. 또 언어와 문화적 차이에서 오는 문제 때문에 한국 직원과 갈등이 생기는 일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소통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 일리야와 비정상회담

 

일리야는 <비정상 회담>을 통해 방송에 데뷔했다. 일리야를 방송으로 이끈 건 그의 강력한 라이벌 타일러였다. 미국 대표 타일러와는 방송 출연 전부터 알고 지내던 사이다. 타일러의 소개로 <비정상 회담> 출연 면접을 보았고, 대중들의 반응이 좋아 고정 멤버가 되었다. 

 

처음 방송에 출연했을 때 긴장을 많이 했다고 한다. 이후 고정 멤버가 되면서 점차 방송에 익숙해져 긴장했던 얼굴도 풀렸다. 녹화할 때면 열띤 토론이 진행되어 카메라를 잊을 정도였다. 방송 출연을 통해 좋은 반응을 얻었지만 그의 삶에는 별다른 영향을 주지 않았다. 

 

인터넷에 이름을 치면 정보가 나오는 정도였다. 러시아 친구들은 러시아에 대한 편견을 깨라고 격려해 주었다고 한다. 하지만 러시아 대표라 정치와 같은 민감한 주제도 다뤄야 했다. 푸틴을 비롯해 러시아의 입장을 대변해 다른 패널은 물론 대중들에게 비판을 받는 일도 있었다. 

 

방송을 통해 유명해진 일리야지만, 후배(?) 외국인에게는 방송을 추천하지 않는다. 방송은 화려하게 보이지만 숨은 오해가 많고 일반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어렵다고 말한다. 일리야 역시 그런 압력을 견디지 못해 방송을 그만둔 친구들을 많이 보았다.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었지만 가장 컸던 건 역시나 악플이다. 일리야는 한국의 악플 문화가 다른 나라보다 훨씬 심하다고 말한다. 악플에 대응하는 개인의 성격과 반응이 다르기 때문에, 마음의 준비 없이 방송을 시작했다가 큰 상처를 받을 수 있다고 한다. 

 

▶ 귀화, 대한러시안 일리야

 

일리야는 러시아 국적을 포기하고 한국으로 귀화했다. 사실 일리야는 큰 뜻을 품고 귀화를 한건 아니다. 일리야가 귀화를 결심한 건 비자문제 때문이었다. 비자를 받고 갱신하는 조건이 강화되면서 많은 외국인들이 한국을 떠나고 있다. 일리야는 학생비자로 한국에 와 거주비자(F-2)를 받아 생활했다.

 

하지만 거주비자(F-2)를 갱신하는 조건이 너무 어려웠다. 1억을 넘게 벌어야 하고, 아파트는 전세로 얻어야 하는 등 외국인 근로자가 충족시키기에 장벽이 너무 높았다. 계속해서 어려워지는 비자갱신 조건 때문에 한국을 떠나야 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들었다.

 

일리야는 이미 한국에 터전을 잡고 살고 있는데 갑자기 러시아로 돌아가면 생활이 어려워질게 뻔했다. 그래서 귀화를 해 한국 국적을 취득하는 방법을 택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한국에서 계속 살고 싶었기 때문이다. 러시아를 비롯해 다른 나라로 이주할 계획도 없었다. 

 

한국에 살려면 국민이 되는 게 정답이라고 판단했다. 하지만 일리야에게 귀화는 중대한 결정이 아닌 법적인 절차일 뿐이었다. 귀화를 해 전혀 새로운 사람이 되거나, 또 다른 인생을 시작하게 되는게 아니었다. 그저 비자 문제없이 한국에 거주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한 것뿐이다.

 

일리야는 교육에 관심이 많아 대학교 교수에 더 매진하고 있다. 한국에 살고 있는 러시아 출신 유명인으로서 한국을 알리는 활동을 하는 게 목표다. 언어학을 전공했지만 지금은 한국사회와 문화에 더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또 사회문제와 정치적인 발언도 서슴지 않는다. 

 

1982년생으로 마흔을 넘긴 나이지만 아직 결혼하지 않은 미혼이다. 결혼에 대해 깊게 생각해본 적은 없지만, 마음이 맞는 사람이라면 러시아든 한국이든, 또 다른 나라 사람이든 상관하지 않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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